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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찰기(讀書札記)/금융의 역사

서문

주택담보대출

집을 사는 사람 - 30년 동안 매달 돈을 내겠다는 약속으로 을 받음

집을 파는 사람 - 돈을 미래 시점들로 옮겨놓는 대가로 을 넘겨줌

즉, 미래와 현재의 돈을 거래한 것

집을 사는 사람은 어떻게 자기 것도 아닌 거액의 집을 단숨에 얻어낼 수 있는걸까?

이 엄청난 힘은 어디서 왔으며, 대체 어떻게 작동하는 것일까?

주택담보대출이 잘못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금융기술은 타임머신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돈이 타는 타임머신이다.

이 타임머신을 이용해 현재의 경제 상황미래의 경제 상황을 바꿀 수 있다.

 

이 타임머신은 생각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인간은 미래를 상상하고 계산하는 능력을 키웠으며, 과거를 깊이 이해하고 계량하는 능력도 키웠다.

 

문명 발달의 필요조건인 금융기술

문명이 발달하려면 시간위험이라는 조건을 관리할 정교한 도구가 필요하다.

여러 세기를 넘어서까지 효력이 미치는 약속을 표현하고 실행할 수 있도록 하는 도구가 금융기술이다.

 

인류는 금융을 통해 생존의 위험을 줄여왔고, 시간을 넘나들며 자원을 배분하여 성장을 촉진하였다.

하지만 시점 간, 즉 현재와 미래 사이의 균형(trade-off)이 유지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를 낳기도 했다.

 

금융의 기본 요소

1. 시간을 넘나들며 경제적 가치를 재할당한다.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2. 위험을 재할당한다.

자동차 보험 계약을 통해 차 사고에 따른 위험을 대형 기관으로 옮기고, 대형 기관은 운전자 보험 계약 각각을 한데 모아 위험을 분산시킨다.

3. 자본을 재할당한다.

주식시자은 투자금을 생산성 높은 기업에 공급하고, 은행은 이익을 낼 잠재력을 갖춘 회사에 대출을 해준다.

4. 재할당 과정을 접근하기 용이하고 정교하게 만든다.

역사가 흐르며 금융이 발달하자 체결할 수 있는 시점 간 계약도 점점 다양해졌다.

(계약이 다양하고 정교해졌다는 말은, 이를 낳은 사회도 복잡해졌다는 얘기다)

주택저당증권(MBS, mortgage-backed security) 계약서는 엄청나게 다양한 조건/권리/의무를 다루느라 900쪽이 넘어가기도 한다.

 

시간을 넘나드는 재할당

금융계약은 일반적으로 가치를 현재로 옮기려는 사람과 가치를 미래로 옮기려는 사람이 체결한다.

소비의 측면

소비동기: 지금 써야 할 비용을 충당하고, 그 밖에 예기치 못하게 발생한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현금이 필요한 것

소비자는 위험을 줄이려고 금전 등을 차입한다.

금융계약을 활용하면 돈을 빌리거나 미래를 저당 잡혀 당장의 부정적 충격을 완화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흉작이나 갑작스러운 질병과 같이 극단적 환경에 처해도 긴급자금을 대출하면 일용할 양식을 얻고 병원비를 댈 수 있으므로 좋은 시절과 나쁜 시절의 격차가 줄어든다.

이러한 금융 기능을 경제학 용어로 '시점 간 소비조정(intertemporal smoothing of consumption)'이라고 한다.

생산의 측면

생산자의 차입은 성장을 전제로 하므로 경제에서 특별한 역할을 한다.

금융은 자본을 한데 모아 미래에 더 큰 가치를 창출할 사업을 일으킨다.

예를 들어, 농부가 씨앗을 살 돈을 빌려 파종하고 길러 수확하면 씨앗 원가를 훨씬 뛰어넘는 수익을 올릴 수 있다.

반면 농부가 돈을 빌리지 못한다면 밭을 생산적으로 쓰지 못한다.

재능의 측면

금융은 인간이 재능을 생산적으로 사용하게 만든다.

금융이 없다면 이미 돈이 많은 사람만 창업할 수 있을 것이다.

사업계획서의 생산성이 높아 보인다면 사업가는 자본을 공급받는다.

그런 의미에서 금융은 부가 주는 경제적 이익을 널리 퍼뜨린다.

문제점

소비자에게 대출하면 낭비를 부추긴다.

궁지에 몰린 차입자를 착취하게 될 수 있다.

생산자가 돈을 구하기 쉬워지면 수익성 높은 사업뿐 아니라 어처구니없는 계획에도 자금이 흘러들어갈 수 있다.

 

투자

소비 또는 생산을 하려면 지금 당장 자본을 써야 한다.

이때 자본을 공급하는 것이 투자이다.

돈을 쓰지 않고 투자하려면 욕구는 나중에 충족해야 한다. 합당한 이유 없이 욕구충족 시점을 늦추려는 사람은 없다.

투자자를 투자하게 만드는 제일 중요한 동기가 미래에 더 많이 소비하리라는 기대이다.

 

예를 들어, 대출을 살펴보면 대부자는 원금에 이자까지 받으리라고 기대한다.

대출기간이 길어질수록 투자자가 소비할 시점도 그만큼 늦어지고, 따라서 보상으로 더 많은 이자를 약속받는 것이 보통이다.

따라서 투자수익률은 '시간의 가격'이라고 볼 수 있다.

돈의 시점 간 수요와 공급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주는 것이 투자수익률이다.

 

균형은 매우 미묘하다.

금융시장이 붕괴하면 투자자는 기업으로 자본을 덜 보낼 것이다.

이 등식에서 중요한 요소가 인구이다. 전 세계 인구의 기대수명이 길어지면 저축해야 할 필요성도 높아진다.

금융은 현재와 미래를 매개할 뿐 아니라 젊은이와 노인도 매개한다.

 

현재와 미래의 금융 등식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경제가 진정 성장해야 한다.

개발도상국의 성장률이 선진국 성장률에 근접하는 지금은 미래 성장동력을 찾는 일이 점점 어려워진다.

성장의 한계라는, 그리고 그 결과인 현재와 미래의 경제적 가치 단절이라는 악령은 오래전부터 경제학자와 경제기획자의 골칫거리였다.

 

금융과 문화

사회는 금융을 도덕적/문화적 맥락에 놓으려고 힘을 쏟아 왔다.

가족이란 어떤 의미에서는 경제적 가치를 서로 다른 시점으로 옮기는 제도 중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예컨대 부모가 늙으면 자녀가 돌본다는 사회적 약속은 퇴직연금과 마찬가지이다.

동일하게 가족/친구/공동체 구성원 사이에서 선물을 받으면 보답한다는 약속은 금융대출과 같은 기능을 한다.

하지만 대출과는 달리 미래에 받는 보상이 이자가 아니라 사회적 의무이므로 사회 연결망을 느슨하게가 아니라 탄탄하게 만든다.

 

이러한 약속은 금융계약보다 훨씬 전에 나타났다.

그런 의미에서 금융은 시점문제를 해결하는 전통 방식을 대체하거나 개선하면서 등장하여 기존 균형상태에 도전했다.

 

금융과 문명

금융은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인간관계를 재설정한다.

화폐/대출/조합 같은 금융도구는 상호작용할 생각이 없었던 사람과도 경제적 상호작용을 하게 만들었다.

금융시장 덕분에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전통적인 상호 협의보다 훨씬 효율적인 방식으로 시간을 넘나들며 가치를 거래하게 되었다.

신앙이나 문화규범을 공유할 필요 없이, 단지 문서를 작성하고 계약을 실행하는 구조만 공유하면 된다.

금융상품은 개인끼리 합의할 차원을 확장했고, 그리하여 복잡한 다차원적 도시사회에 필요한 것을 적절하게 충족시켰다.

 

금융과 지식

금융문제를 해결하려다 보니 문자/기록/계산/인쇄가 발전했다.

또 로가리듬(로그), 확률론, 매우 긴 시계열 표현법, 시간과 변화과정을 무한히 작은 간격으로 나누는 방법같이 매우 중요한 수학적 혁신이 일어나는 데도 직접 관계했다.

이처럼 복잡한 개념 틀은 전통적 사고방식과 계략적 사고방식이 서로 충돌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과 부에 관한 문화 관념은 기호/신화/도덕감각에 담겨 있다. 이러한 대립을 이해하고 관리하는 것은 현대사회에서도 중요한 과제이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금융에는 두 가지 차원이 있다.

하드웨어는 금융계약, 기업, 은행, 시장, 통화체계, 법률체계 등이다. 이를 통틀어 금융구조라 부른다.

그리고 금융은 집계, 기록, 알고리즘 계산, 미적분, 확률론 같은 고급 수학기법 등을 포괄하는 분석체계이기도 하다.

소프트웨어는 돈, 시간, 가치와 관련한 복잡한 문제의 틀을 잡고 해결하는 수단이다. 본질적으로 이것이 금융이라는 기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