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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찰기(讀書札記)/완벽에 대한 반론

완벽에 대한 반론(The Case against PERFECTION) - 마이클 샌델

1. 강화의 윤리학

(case 1)

둘 다 청각장애인인 레즈비언 커플. 청각장애를 하나의 문화적 정체성으로 생각했으며,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겨 자신들의 아이도 청각장애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함. 5대째 청각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의 정자를 구해 청각장애를 가진 아이를 낳음.

→ 계획적으로 자녀를 청각장애로 만드는 것은 잘못된 일인가?

 

(case 2)

하버드 대학을 포함한 아이비리그 대학들의 교내신문에 난자 제공자를 구하는 광고를 실은 불임 부부. 제공 여성은 키가 175cm에 탄탄한 몸매여야 하고 가족 병력이 없어야 하며 SAT 점수가 1400점 이상이어야 했음. 난자 제공자에게는 5만 달러 제공.

→ case1과는 달리 비난이 쏟아지지 않음.

→ 특정한 유전적 특성을 가진 아이를 '주문'하려는 부모의 행동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일까?

 

(입장 1)

어차피 부모가 원하는 특성을 지닌 아이를 낳을 확률이 100%가 아니기 때문에 case1, 2의 시도가 잘못된건 아니다.

→ 예측 불가능성이라는 요소가  도덕적인 면에 차이를 가져다 주는가?

→ 생명공학 발전으로 불확실성이 제거되면 어떻게 되는가?

 

(case 3)

죽은 자신의 고양이를 너무 사랑했던 한 여성. 캘리포니아에 있는 'Genetic Savings & Clone'이라는 회사에 죽은 고양이의 유전자 샘플과 복제 비용을 제공하고 유전적으로 동일한 고양이를 받음. 

→ 길고양이가 넘쳐나는데 애완동물 복제에 거금을 들이는 건 지나친 일이며 성공적인 복제물을 만들기 위해 임신 중 죽는 동물이 많아질거라는 입장이 있음.

→ 만약 기술 발전으로 위와 같은 문제가 다 해결된다면 문제가 없는 것일까?

→ 그렇다면 인간 복제는?

불안감의 근원

(입장 1)

복제가 안전하지 못하며 심각한 기형이나 선천적 결함을 지닌 2세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높다.

→ 복제 기술이 발전하여 그런 위험도가 자연임신의 수준이 된다면 문제가 없는가?

 

(입장 2)

복제로 태어날 아이의 자율권을 침해할 수 있다. 부모가 아이의 유전적 구성을 선택함으로써 아이가 가질 온전한 자유로움을 빼앗는다. 

→ 부모가 선택하지 않아도 어차피 아이도 자신의 신체적 특성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는 없다. 

→ 아이가 아니라 자신의 유전적 강화를 원하는 사람들에 대한 도덕적 망설임에 대해서는 설명을 못해준다. 운동선수가 유전학 기술로 근육을 강화하더라도 자기 자식에게 그 특성이 전달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러한 유전적 강화에 불편함을 느낀다.

유전공학

근육 강화

IOC와 프로스포츠 리그들은 운동 선수의 유전공학적 강화를 금지해야 하는가?

 

(입장 1)

인체에 해로운 부작용을 야기한다. (안전성)

→ 안전하다면 문제가 없는가?

 

(입장 2)

다른 경쟁 선수들이 불리하므로 공정성에 위배된다. (공정성)

→ 이미 유전적으로 남들보다 더 훌륭한 재능을 타고난 이들은 언제나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선천적 재능이 공정성을 훼손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기억력 강화

치매 노인, 비즈니스맨, 트라우마 환자가 사용하게 될 기억력 강화/편집 약물

→ 인간이 기억력 강화 기술의 도움을 받는 계급과 시들해지는 자연적 기억력에 의존하는 계급으로 나뉠 수 있다는 주장이 있음

→ 문제는 '강화에 대한 평등한 접근권을 어떻게 확보하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그 기술을 과연 열망해야 하는가?'이다.

신장 강화

모두가 성장호르몬 사용으로 키가 커지면 호르몬 강화 경쟁이 일어나 모두가 불행해질 것이다. 특히 경제적 여유가 없어 작은 키를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은 더 불행해질 것이다.

→ 공적 자금을 들여 모두가 성장호르몬을 맞도록 하면 해결되는 문제인가?

→ 이 반론은 강화를 이루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태도나 성향을 다루지 않았다.

성별 선택

착상 전 유전진단(PGD)을 통해서 성별을 선택할 수 있다. 배양용 페트리 접시에서 여러 개의 난자를 수정시킨 후 8세포기가 될 때까지 배양하여 원하는 성별의 배아를 착상시키고 나머지는 폐기한다.

 

(입장 1)

(낙태 반대 논거와 동일하게) 배아도 하나의 인격(person)이기 때문에 배아 선별법은 영아 살해와 마찬가지다.

→ 수단이 잘못되었다는 의견이 될 뿐 성별 선택 자체가 잘못되었는지에 대한 답변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입장 2)

성별 선택이 성차별의 도구가 된다.

→ 오히려 성비 균형을 맞추는 방식으로 엄격하게 운영하면 문제가 없는 것일까?

 

2. 생체공학적 운동선수

철저한 훈련과 노력의 결과로 홈런 70개 치기 vs. 스테로이드/유전학 기술 덕분에 강화된 근육으로 홈런 70개 치기

스포츠의 이상理想: 노력인가, 재능인가

(입장 1)

주체적 행위자라고 할 수 없다. 행위자의 성취가 아니라 기술을 고안해낸 발명가의 성취다. (인간의 주체적 행위human agency 훼손)

→ 더 위험한 것은 이러한 기술이 일종의 과도한 행위 주체성, 다시 말해 우리의 목적과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인간 본성을 비롯한 자연을 개조하려는 프로메테우스적 열망을 대표한다는 사실이다.

 

(마이클 샌델)

삶을 주어진 선물로 인정하는 것은 우리의 재능과 능력이 전적으로 우리의 행동의 결과는 아니며 완전히 우리의 소유도 아니라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다. ...또한 세상의 모든 것을 우리가 원하는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님을 인정하는 것이다. ... 이 같은 관점을 완전히 배제하고서는 인간의 활동과 성취에서 어떤 점을 존경하는지를 설명하기 어렵다.

→ 우리는 피나는 노력에도, 천부적 재능에도 존경을 보낸다.

→ 하지만 사람들은 강화 약물을 복용했을 때 노력과 재능 중에 노력의 가치가 더 심각하게 훼손되었다고 느낀다.

→ 그러나 스포츠의 핵심은 노력이 아니라 탁월한 성과이며, 성과는 어느정도 재능에 의존하고 있고 재능은 행위의 결과가 아니다.

→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사람들은 노력을 통해 성공을 얻는 것이라 믿고 싶어 하지만, 선천적 재능에 대한 존경심은 실적주의(meritocracy)의 논리를 약화하며 칭찬과 보상이 노력에만 근거해야 한다는 점에도 의문을 갖게 한다. ('공정이라는 착각' 참고)

→ 이 모순이 가져다주는 심리적 불편함 때문에 노력의 도덕적 중요성을 더욱 부풀리고 재능의 의미를 평가절하한다.

→ 유전적 강화의 진짜 문제는, 자연적으로 타고난 재능을 계발하고 발휘하는 것을 높이 평가하는 스포츠 경쟁을 오염시킨다는 점이다.

※요약※ 

우리는 타고난 재능을 통해서든, 피나는 노력을 통해서든 탁월한 성과를 낸 스포츠 선수에게 존경을 보낸다. 약물/유전적 강화 기술을 사용하면 존경의 근거가 퇴색된다. 따라서 겸손하게 생긴대로 살자.

경기력 강화의 수단: 하이테크와 로테크

타고난 재능을 계발하는 것과 인공적 기술로 그것을 변질시키는 것을 가르는 구분선이 항상 명확한 것은 아니다.

 

(case 1)

육상선수들이 신는 운동화 vs. 마라톤 대회에서 중간에 지하철을 이용한 로지 루이스(Rosie Ruiz)  

 

(case 2)

타이거 우즈는 시력 개선을 위해 라식 수술을 받고 이후 다섯 차례 경기에서 연달에 우승했다.

 

(case 3)

나이키 사는 미국 마라톤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을 목적으로 '고도 조절 숙소'를 운영한다. 이 시설은 분자 여과기를 통해 산소 농도를 조절해 해발 3658~5182미터의 산소 농도를 만들어낸다. 이를 통해 산소를 운반하는 적혈구 수를 증가시킨다.

vs.

에리스로포이에틴(EPO, 신장에서 만드는 적혈구 생성 촉진 호르몬)을 생성하는 유전자 주입 방법을 찾아냈다.

→ 고도 조절 숙소와 EPO 주사의 결과는 같다.

→ 후자는 2000년부터 금지였지만, 전자는 2006년부터 금지 결정이 내려졌다.

스포츠 경기의 본질

경기의 질을 높이는 변화와 그것을 오염시키는 변화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 그 답은 스포츠의 본질이 무엇인가? 새로운 기술이 최고의 선수를 특징짓는 재능과 기술을 돋보이게 하는가, 아니면 그 의미를 퇴색시키는가에 달려있다.

→ 강화의 윤리에 대한 논쟁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해당 스포츠의 궁극적인 목적이나 핵심 및 미덕을 둘러싼 논쟁이다.

 

(case 1)

아마추어는 온전히 선수 혼자만의 힘으로 훈련 vs. 개인 코치를 두고 훈련

 

(case 2)

무대공포증이 있는 일부 클래식 음악가들이 복용하는 베타 차단제(심박수, 혈압, 심장 박출량을 감소시켜줌)

자연스로운 방식으로 무대공포증을 극복해야 한다 vs. 불편한 장애물을 제거하여 연주자가 진정한 음악적 재능을 발휘하게 해준다

 

(case 3)

최근 들어 많은 콘서트홀, 오페라 극장에 설치되는 음향 증폭 시스템

성악가가 자연적인 인간의 목소리만으로 공연장 전체를 꽉 채우는 것은 그것 자체로 예술의 일부라는 주장

 

(case 4)

선천적 다리 질환으로 인한 통증 때문에 제대로 걷기 힘든 한 골프 선수가 프로 경기에서 골프카트를 이용할 권리를 얻기 위해 미국 장애인법을 근거로 제기한 소송에서 승소. 골프 코스를 걷는 행위는 경기의 본질적인 측면이 아니라고 판단.

 

(입장 1, 마이클 샌델)

경기의 주요 목적과 그것에 관한 미덕이 무엇인지 판단하지 않고서는 우리가 스포츠의 어떤 측면에 존경과 감탄을 보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스포츠의 규칙이 칭송할 가치가 있는 특정한 재능과 미덕을 발휘시키고 그것을 축하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저 임의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경기의 결과에 별로 관심을 갖지 않을 것이다.

 

(입장 2)

스포츠에 주요 목적이라는 것은 없다. 어떤 경기에서든 규칙이란 완전히 임의적인 것이며, 규칙을 정당화하는 것은 오로지 경기의 오락적 재미와 관중 수 뿐이다.

 

3. 맞춤 아기를 설계하는 부모

(마이클 샌델)

자녀를 선물로 인정하는 것은 자녀들을 설계의 대상이나 부모 의지의 결과물, 또는 부모의 야망을 이루는 수단으로 여기지 않고 자녀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부모의 사랑은 자식이 가진 재능과 특성을 조건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 신학자 윌리엄 F. 메이(William F. May) "선택하지 않은 것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태도"

틀에 맞추기와 있는 그대로 지켜보기

문제는 자녀를 설계하려는 부모의 오만함, 그리고 생명 탄생의 신비로움을 마음대로 통제하려는 욕구다.

→ 윌리엄 메이가 말한 것과 같은 인간 본연의 공감과 겸손함을 갖지 못하게 만든다.

→ 그렇다고 자녀가 질병에 걸렸을때 수동적으로 대처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의학의 본질적인 목적에 맞게 자녀의 질병을 치료해주는건 됨)

→ 아이를 치료할 의무를 넘어 멀쩡한 아이를 더 강화할 의무는, 건강이 그 자체로 독특한 선善이 아니라 행복을 최대화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는 공리주의적 관점을 받아들이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 하지만 좋은 건강은 수단이 아니라 인간의 번영을 구성하는 본질적 요소다. (건강의 거장이 되고 싶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메이의 설명에 따르면, 부모의 사랑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받아들이는 사랑'과 '변화시키는 사랑'이다. 받아들이는 사랑은 아이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며 긍정하는 것이고, 변화시키는 사랑은 아이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다. 둘 중 한 측면이 과도해지면 다른 한 측면이 그 과도함을 바로잡는 역할을 해준다. 

→ 지나치게 의욕적인 부모들은 변화시키는 사랑에 열중하는 경향이 있다.

→ 아이의 능력을 교육으로 향상시키는 것과 생명공학을 통해 향상시키는 것은 원칙적으로 아무런 차이가 없다. - 강화 찬성론자

→ 유전적 구성을 조작해서 아이를 강화하려는 시도가 우생학을 연상시킨다. - 강화 반대론자

성과에 대한 압력

청소년 스포츠 리그에서 혹사당해 과다 사용 손상으로 병원을 찾는 아이들이 늘어남.

자녀의 대학 입학 원서를 써주고, 학기말 리포트 쓰는 것을 도와주고, 학교에 전화를 걸어 아이를 깨워달라고 부탁하는 부모

SAT 시험에서 추가 시간을 주는 학습장애 진단을 받기 위해 '장애 진단서'를 구입하는 부모들

두 살배기 쌍둥이 딸을 유명 유치원에 집어넣으려고 AT&T의 주식을 거짓으로 평가한 주식 애널리스트

1981~1997년 동안 3배로 늘어난 6~8세 아이들의 숙제 양

ADHD 치료를 위해 개발된 리탈린(Ritalin), 애더럴(Adderall)의 생산량은 지난 15년 동안 각각 1700%, 3000% 증가함

→ 생명공학 기술로 아이의 능력을 강화하는 것이 과도한 간섭과 관리가 수반된 양육 방식과 정신적으로 비슷하다.

→ 과잉 양육은 삶을 선물로 바라보는 관점을 놓친 채 과도하게 통제하고 지배하려는 심리를 보여주는 징후다.

→ 이는 우생학에 가까워지는 불안한 징조다.

 

4. 우생학의 어제와 오늘

'잘 태어난(well born)'의 의미를 포함한 '우생학(優生學, eugenics)'이라는 말은 1883년 찰스 다윈의 사촌인 프랜시스 골턴 경이 제창한 단어다.

과거의 우생학

20세기 초 미국에서 대중적인 운동을 불러일으킨 우생학은 많은 진보 개혁주의자들 및 시어도어 루스벨트까지 지지하는 입장이었다.

 

우생학 운동에는 잔인한 측면도 있었다.

→ 바람직하지 않은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정신병 환자, 감옥 수감자, 극빈자 등)의 번식을 막기 위한 법안을 통과시키려고 시도했다.

→ 29개 주에서는 강제 단종법(sterilization law)을 채택해 유전적으로 '결함 있는' 미국인들 6만 명 이상에게 불임 수술을 시켰다.

 

히틀러는 1933년 독일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 오른 후 우생학에 근거한 단종법을 공포했고, 이는 미국 우생학자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나치가 불임수술에 그치지 않고 대량 집단학살을 자행한 사실을 확인한 미국에서는 우생학 운동이 후퇴하기 시작한다.

→ 그런데 정확히 무엇 때문에 우생학이 잘못된 것인가?

→ 다음 세대의 유전적 구성을 통제하기 위한 비강제적 방법들도 잘못된 것인가?

자유시장 우생학

1980년 싱가포르 총리 리콴유는 "재능있는 인재가 고갈될 것"을 우려하여, 싱가포르 고학력 여성들의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정책들을 만들었다. 동시에 고졸 미만의 저소득층 여성들이 불임수술을 받는 것에 동의하는 경우 저가 아파트의 계약금 4000달러를 지원했다.

 

(입장 1)

강제성이 없는 것 같지만 4000달러라는 지원금 제도가 강제적인 정책과 흡사하다.

출산에 관한 선택은 국가의 간섭이나 감시 없이 개인이 자신의 의지에 따라 스스로 내려야 하는 것인데 그런 선택권을 침해한다.

 

(입장 2, 마이클 샌델)

계획에 따라 고의적으로 자손의 유전적 특성을 결정하려는 태도는 국가가 지원하는 우생학 정책보다는 부모가 태어날 아기를 고르는 것을 가능케 하는 출산 관행에서 나타날 가능성이 더 높다.

→ 원하지 않는 유전자를 가진 아이를 낙태하는 관행

→ 인공수정 시 원하는 유전적 특성을 가진 생식세포를 고를 수 있게 해주는 관행

자유주의 우생학

영미권의 영향력 있는 일단의 정치철학자들은 새로운 '자유주의 우생학(liberal eugenics)'을 요구한다.

→ 아이의 자율성을 제한하지 않는 비강제적인 유전적 강화를 의미한다.

→ 로널드 드워킨은 미래 세대가 수명이 길어지고 더 풍부한 재능과 성취를 누릴 수 있게 한다는 야망에는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 로버트 노직은 부모들이 원하는 디자인에 따라 아이를 주문할 수 있는 "유전학적 슈퍼마켓"을 제안했다.

→ 존 롤스는 '정의론'에서 자유주의적 우생학을 지지하는 입장을 살짝 내비쳤다.

 

(마이클 샌델)

자유주의적 우생학은 사회적 개혁을 위한 운동이 아니라, 특권층 부모가 원하는 종류의 아이를 갖고 아이에게 경쟁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춰주기 위한 방법이다.

 

자유주의적 우생학이 개인의 선택을 강조함에도 불구하고, 얼핏 보기와는 다르게 국가의 강요라는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 자식의 행복을 증진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부모의 의무임을 감안할 때, 그러한 강화는 허용 가능할 뿐만 아니라 의무적인 것이 된다.

 

(위르겐 하버마스)

자녀를 선택하거나 자질을 강화하기 위한 유전학적 개입은 자유주의 원칙인 자율성과 평등성을 위반한다.

→ 유전적으로 프로그래밍된 사람을 "자기 자신의 삶의 온전한 주체자"로 볼 수 없다.

→ 세대 간의 "자유롭고 평등한 인간들 사이의 본질적으로 균형적인 관계"를 파괴하기 때문에 평등성을 침해한다.

→ 부모가 아이의 설계자가 되는 순간 불가피하게 그 부모는 아이 삶에 대해 상호성이 성립될 수 없는 책임을 지게 된다.

 

(마이클 샌델의 반론)

어차피 우리는 자신이 갖고 태어나는 유전적 특질을 스스로 선택할 수 없기 때문에 딱히 자율성이 훼손되는 것은 아니다.

유전적 조작이 아니더라도 과잉 양육을 통해 부모와 아이의 삶에 상호성은 훼손될 수 있기 때문에 평등성, 상호성 논리도 약하다.

 

(하버마스의 다른 논리)

"우리는 그 본질상 우리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는 무언가와 관련해서 자신의 자유를 경험한다."

→ 자유롭다는 생각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기원을 "인간의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어떤 시초"에 둘 수 있어야 한다.

 

(마이클 샌델)

우생학적 양육은 세계에 대한 특정한 태도, 즉 정복하고 통제하려는 태도를 표현하고 확고히 하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다.

→ 우리가 가진 자유의 일부분이 자연적으로 주어진 능력과 끊임없이 교섭하는 과정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5. 정복과 선물

겸손과 책임과 연대

유전학적 혁명이 인간의 능력과 성취에 선물의 성격이 존재한다는 우리의 인식을 잠식한다면, 겸손·책임·연대라는 도덕적 지평의 세 가지 중요한 특성에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원하는 대로 자녀를 고를 수 없다는 사실이 주는 겸손함은 예상치 못한 것을 감내하고, 불협화음을 수용하고, 통제하려는 충동을 자제하게 만든다.

→ 유전학적 자기 강화에 익숙해지면 겸손을 위한 사회적 토대도 서서히 약화된다.

 

유전적 강화에 의해 겸손이 와해되면서 책임성이 엄청난 수준으로 증폭된다.

→ 아이를 위한 적절한 유전적 특성을 선택한 것이나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이 부모에게 지워지게 된다.

→ 요즘은 암페타민이나 여타 자극제를 복용하지 않고 경기에 나오는 선수들은 "발가벗고 출전했다(playing naked)"는 비난을 받는다.

 

운명에 대한 책임성이 증폭되면 자신보다 불운한 사람들과의 연대성이 줄어들 수 있다.

→ 보험을 예를 들어 볼 때, 사람들은 자신이 언제 이런저런 질병에 걸릴지 모르기 때문에 보험에 가입하여 리스크를 공동 부담한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상호의존 관계가 수립된다.

→ 하지만 보험 시장은 사람들이 질병이나 사고와 관련된 위험 요인을 모르거나 통제할 수 없을 때에만 연대성이 드러나는 공간이다.

반론에 대한 반론

앞선 논지에 두 가지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 논지가 지나치게 종교적이라는 비판.

→ 결과주의 관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비판.

 

'선물로 주어진 삶'이라는 개념은 그 선물을 준 주체를 전제로 한다고 비판한다. ... 하지만 흔히 사람들은 반드시 엄밀한 형이상학적 관점을 취하지 않고도 생명이나 자연의 신성함에 대해 말한다. ... 신성함에 대한 관점들의 공통점은 자연과 그 안에 살고 있는 생명체를 단순한 도구 이상으로 존중한다는 사실이다.

 

생명공학이 겸손·책임·연대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지적하는 논리는 그런 미덕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한테만 설득력을 지닌다고 비판한다. 정복을 향한 욕구를 가진 개인이 그 욕구를 상쇄하는 도덕적 선을 달성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하는 비판이다. 하지만 유전적 강화를 둘러싼 논란에 내재한 도덕적 의미는 자율성이나 권리 같은 익숙한 개념만으로, 또 비용과 이익의 계산만으로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강화에 대한 입장은 그것이 개인적 악덕이냐 아니냐가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습관과 존재 방식에 결부되는 문제라는 것이다.

 

세상에 맞추기 위해 우리의 본성을 바꾸는 것이야말로 사실 우리의 힘과 자율권을 잃어버리는 행동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세상에 대해 비판적으로 숙고하기 힘들어지며, 정치적·사회적 개선을 향한 충동도 무뎌진다.

 

에필로그. 배아 윤리학: 줄기세포 논쟁